임진왜란 시기 대마도의 다이묘였던, 소 요시토시

 


소 요시토시

 요시토시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이자, 쓰시마 섬의 다이묘입니다. 기리시탄(기독교) 다이묘로 유명하며, 세례명은 다리오(Dario)이죠. 고니시 유키나가의 딸 고니시 마리아는 그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니까 고니시의 사위이지요. 요시토시는 원래 종교가 없었으나 장인의 권유로 가톨릭에 입교하고 독실한 신자가 됩니다.

무엇보다 조선에게 중요한 점은 그가 임진왜란 시기 대마도의 다이묘라는 점이고요. 대마도는 원칙적으로는 다이묘 집안이 일본계인만큼 일본 영토를 지향했으나 실질적으로 당시 반조선 반일본 같은 반반 포지션을 가져가던 지역이기에, 대마도 다이묘(당주)는 조선어와 일본어를 모두 쓸 줄 알아야 했습니다. 또 당주 후계자로 어릴 때 낙점되면 10대 이전부터 조선어 교육을 받았었고, 늦게 낙점된 사람도 바로 조선어 공부를 필사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죠.

당연히 소 요시토시도 조선어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쓰시마 소씨 20대 당주였으며, 한국 측 기록에서는 주로 한자를 그대로 읽어 종의지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임진왜란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선봉 중 하나였으며 전쟁 도중과 이후에도 조선과 일본을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한 다면적인 인물입니다.


1568년, 소 요시토시는 15대 쓰시마 당주 소 마사모리의 4남으로 태어납니다. 제17대 당주 소 요시시게가 은거하면서 소 마사모리의 장자 소 시게나오를 양자로 맞아 가독을 양도하였죠. 그러나 양자들이 계속 죽으면서 소 요시토시가 11살에 가문 제 20대 당주가 됩니다.

1587년 음력 5월 정계에서 물러나 있던 양부 소 요시시게가 당주로 복귀했기 때문에 소 요시토시는 당주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는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 요시토시는 소 요시시게와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신종하였고 대마도의 영지를 인정받습니다.


1592년, 소 요시토시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으로서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쓰시마 섬 북단의 오우라를 출항해 부산에 상륙합니다. 13일에 총공격을 시작으로, 14일에 동래, 15일에 기장, 좌수영, 16일에 양산, 17일에 밀양, 그 후에 대구, 안동, 선산을 차례로 공략하고, 26일에 경상도 순변사 이일을 상주에서 격파합니다.

나중에 소 요시토시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명측의 강화 담당자 심유경과 평화교섭을 진행했지만, 서로 요구하는 조건이 너무 달라 난항을 겪었죠.

이후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소 요시토시는 좌군에 속해 참전합니다. 우선 서쪽으로 진격해, 음력 8월 13일 남원성 공략을 개시하였고, 4일째에 성을 함락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파와 이시다 미츠나리 파로 갈려 서로 권력투쟁을 합니다. 이 와중에도 소 요시토시는 서군 측 인사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여서, 장인 어른의 결정에 따라야 할 수밖에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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