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이며, 20세의 나이로 임진왜란 총대장을 맡은 "우키타 히데이에"

 


우키타 히데이에

 히데이에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다이요이고, 아명은 하치로입니다. 우키타 나오이에의 장남으로 비젠 오카야마 57만 4천 석의 다이묘였지요. 히데이에의 별명은 비젠의 재상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170cm의 큰 키를 가졌었고, 아버지와는 다르게 성실하고 인정이 깊었다고 하네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였고 임진왜란에서는 20세의 나이로 총대장을 맡았으며, 1년 후 행주대첩에서 승자총통을 연결한 변이중 화차의 포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28살 경에는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했다가 패배했습니다. 그리하여 83살에 사망하는 그 날까지 무려 55년 동안 태평양의 작은 섬 하치조마치에서 유배 생활을 합니다.


우키타 히데이에는 1581년 부친인 우키타 나오이에가 병사하자, 10살의 어린 나이로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1582년 가독을 계승하고 영지를 보장받게 됩니다.

이후 우키타는 어릴 때부터 히데요시의 밑에서 자라게 되는데, 히데요시는 말년에 요도도노가 아들 츠루마츠와 히데요리를 낳기 전까지 아들이 없었으므로 양자를 많이 들였으며 우키타도 아들처럼 여기며 매우 아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태어나 후계자였던 조카 도요토미 히데츠구가 죽고 다른 양자들이 다른 집안으로 보내지는 와중에도 히데이에는 양자로 잘 살았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우키타 히데이에는 총대장 겸 제8군 사령관으로서 참전합니다. 히데이에는 임진왜란의 굵직한 전투에 이름을 올리고, 나름대로 성과를 올리기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를 아꼈던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을 굴복시키면 조선의 통치자로서 히데이에를 임명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가장 신뢰받는 양자였으니까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세키가하라 전투 때는 서군에 속하여 초반에는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이끄는 동군과 격전을 펼쳤으나 코바야카와 히데아키 등의 배신으로 전세가 급속히 불리해지자 결국 패배, 시마즈 요시히로의 영지로 도망칩니다. 곧 시마즈 가문이 그를 숨기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이에야스가 체포를 명하자, 요시히로의 아들 시마즈 타다츠네는 사실을 인정하고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그를 넘겼죠. 이후 타다츠네와 처남인 마에다 토시나가의 탄원으로 구노산 도죠쿠에 유폐되었다가 곧 아들 우키타 히데타카 등과 이즈제도의 하치조지마로 추방됩니다.

시마즈 가문과 마에다 가문의 후원으로 우키타 히데이에가 유배지에서 풍족한 생활을 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풍랑으로 인해 잠시 하치죠지마로 상륙한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부하에게 술을 얻어 마셨다는 일화나 누군가에게 주먹밥을 얻어 먹었다는 일화를 보면 그가 불우하고 궁핍하게 일생을 보냈다는 전설들이 존재하지요.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과 싸웠던, 와키자카 야스하루

시마즈 4형제 중 둘째이며, 시마즈 퇴각으로 유명한 '시마즈 요시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