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즈 4형제 중 둘째이며, 시마즈 퇴각으로 유명한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 요시히로는 일본 센고쿠 시대와 에도 시대의 무장이자 다이묘입니다. 시마즈 4형제 중 둘째로, 사츠마 시마즈가 17대 당주이기도 하죠.
임진왜란 당시 사천성 전투에서 7,000~10,000명의 병력으로 약 40,000명의 조명군을 격퇴한 뒤, 명군에서 '귀석만자'라고 부르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소문이 당대 일본에서 퍼졌다고 합니다.
1598년 11월 18일 새벽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이끄는 조명연합군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이순신을 전사시키는데 성공하였으나 결국 대패하지요. 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의 퇴각으로 유명한 인물이 바로 시마즈 요시히로입니다.
시마즈 요시히로 생애
요시히로의 원래 이름은 타다히라였지만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이름을 받아 요시타카로 이름을 바꿨다가 다시 요시히로로 바꿨다고 합니다.
시마즈 가문은 규슈 통일을 눈 앞에 두고 있었는데 궁지에 몰린 오토모 소린은 혼슈를 거의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1587년, 시마즈 가문은 오오토모 가문의 원군 요청을 받고 규슈에 당도한 도요토미 히데나가가 이끄는 도요토미군과 싸웠으나 병력이 열세라 패배했고, 규슈 통일전쟁에서 얻었던 땅들을 거의 다 빼앗기고 규슈 남부만 영지로 인정받습니다.
이후 장남인 요시히사가 책임을 지고 은퇴하였으므로 요시히로가 뒤를 이어서 가독을 상속합니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임진왜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히데요시의 1만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전합니다. 당시 일본 원정군의 거의 전부가 한꺼번에 동원된 제2차 진주성 전투에 참가해 10일간의 혈투 끝에 성을 함락시킵니다. 1597년엔 도도 다카토라가 이끄는 수군과 제휴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을 격파합니다. 8월에 남원 전투에 참가하고 부여까지 북상했으며 정읍을 지나 해남에 남하합니다. 10월 말부터 사천을 수비합니다. 이렇게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왜란 주요 전투에서 모두 활약합니다.
시마즈 요시히로와 세키가하라 전투
조선에서의 철수 후,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사츠마의 상황은 나빴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전투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고 본국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요시히사는 무시합니다. 시마즈 토요히사 등 수 백여명만이 가문의 뜻과는 별개로 각자 요시히로를 위해 달려와 줬습니다. 대략 150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하네요.
세키가하라 전투가 시작되고, 시마즈군은 본진의 서쪽에 위치해 비교적 최전선에 있었지만 침묵합니다. 서군이 전황에서 밀리자 미쓰나리가 직접 와서 부탁했지만 요청을 계속 무시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등이 동군으로 배신, 서군은 패주하게 됩니다. 동군은 서군 본진으로 밀고 나가면서 시마즈군의 퇴로가 끊겼고, 시마즈군도 공격받게 됩니다.
당시 시마즈 요시히로는 자결을 결심했지만, 조카인 시마즈 토요히사가 설득해서 막습니다. 그리고 시마즈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장인 요시히로만은 탈출시킨다는 결론을 내리고 퇴각을 결심하였죠.
도쿠가와 군에게 포위되었기 때문에 시마즈군은 앞으로 퇴각하게 됩니다. 시마즈군은 깃발을 버리고 부대표식을 부러뜨린 후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징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동군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시마즈의 퇴각이죠. 부하들이 목숨 바쳐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시마즈 요시히로는 무사히 탈출합니다. 남은 병력은 50~80명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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