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가루에서 32만 석의 다이묘가 되는 엄청난 출세를 이룬, "토도 타카토라"

 


토도 타카토라

 그는 전국시대부터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 전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 겸 다이묘입니다. 몇 번이고 주군을 바꾼 무장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워낙 유명하고 스케일이 커서 가려지는 면이 있지만 토도 타카토라도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시가루에서 다이묘가 되는 엄청난 출세를 이룹니다. 축성의 달인이기도 하여 생애 무려 20개의 성을 축성했다고 합니다.

1556년 정월 6일에 오우미국 이누카미군 토도무라에서 토도 겐스케 토라타카와 묘세이 부인(도라)의 차남으로 태어납니다.

1569년 키나이에 영향력을 뻗힌 오다 노부나가가 아자이 나가마사 등을 동원해 이세로 진공하자, 형인 토도 겐시치로 타카노리가 나가마사를 따라 이세 공격에 참여합니다. 타카노리는 이번 전투에 선진을 맡아 오카와치 성을 공격했는데, 훌륭한 무위를 숙부 다가 신스케 요시마사와 함께 보여주었으나 전사하고 맙니다.

이렇게 형을 잃은 토도는 약 1년 뒤인 1570년에, 형과 똑같이 나가마사를 따랐죠. 동월 즈음 벌어진 아네가와 전투에도 참가해, 어린 나이에도 적의 수급을 하나 취하는 군공을 올립니다.


1582년에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하고 히데요시와 아케치 미츠히데가 야마자키 전투를 일으키자 여기에 따라 가 선봉으로서 공을 올립니다. 이후 타키가와 가문과의 전투에도 참여했고, 주군 히데나가는 하리마와 다지마의 2국을 가지는 한 명의 다이묘로 올라가는 것에 성공합니다. 히데나가는 곧 다지마에 입부했지만 마땅한 성곽이 없었기에 아리코야마 성 주변의 이즈시에 성을 하나 만들 것을 명령했는데, 타카토라도 이 명령을 받아 양성을 개축하는 것은 물론, 히메지와 이즈시에서의 통치도 맡게 됩니다.

1592년 타카토라는 임진왜란에도 참전하지만 이순신을 만나 그 동안의 명성과 달리 옥포해전 등에서 패배하고, 정유재란 때 원균을 상대로 칠천량 해전에서 승리하지만 다시 이순신과 명량해전, 절이도 해전 등에서 맞붙어 패배합니다.


그 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속해 승리를 거두었으나 오타니 요시츠구에게 패했고 오사카 전투에서는 쵸소카베 모리치카에 궤멸 직전에 이이 나오타카의 구원을 받아 구사일생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이요 이마바리의 20만석의 다이묘가 됩니다. 1608년에 이세의 츠 지역으로 전봉되면서 2만석을 추가로 받았고, 오사카 전투 이후에 추가로 봉토를 가증받아 최종적으로 32만 3000석이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후엔 닛코 동조궁의 건축을 담당하였으며, 자신의 영지에도 동조궁을 건축합니다.

그는 1630년 에도의 번 저택에서 사망합니다. 후계자로 아들인 토도 타카츠구가 뒤를 이었으며, 대대로 츠번의 번주가 돼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이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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