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태어났다면 천하를 평정했을 독안룡 다테 마사무네

 

                                            

다테 마사무네


다테 마사무네는 일본 전국시대와 도쿠가와 막부 때의 무장이며, 데와 지방의 센고쿠 다이묘입니다. 오슈 후지와라의 후예로 다테 가문 17대 당주였으며, 당주가 되고 불과 5년만에 오슈 최대의 다이묘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주에 오른 시기는,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미 일본을 거의 통일한 상태였기 때문에 위험한 시절이였죠.

그러나 일본 현지에서도 마사무네가 10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천하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다테 마사무네 생애

그는 5살 때 천연두를 앓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다테 마사무네는 독안룡(하나의 눈만 있는 용)이 별명입니다.

그 몰골이 추하다고 하여 친모와 동생에게 미움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살해 위협까지 받아야 했답니다. 그 때문에 하나 뿐인 눈은 다테 마사무네 평생의 트라우마가 됐죠. 이에 대한 컴플렉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반드시 두 눈을 모두 멀쩡하게 그리도록 지시했다고 하네요.


전술가로서 다테 마사무네

외눈인 탓에 강인한 인상을 풍기지만, 대부분의 굵직한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크게 밀리는 등 전쟁 쪽으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약소 가문인 오사키 가문을 상대로도 패배하고, 비슷한 전력인 사타케나 모가미를 상대로는 가문 멸망의 위기까지 몰렸었죠.

특히 세키가하라 전투 때는 동군이었던 다테 군은 서군에 속하는 우에스기 군과 전투를 벌였다가 바로 패배하였고, 결국 마사무네는 도망가는 기병들 틈에 섞여 우에스기 군의 공격을 몇 차례나 받아야 했습니다.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전초전부터 양측 주력 부대가 갑작스럽게 조우하는 예상 외의 일이 발생했는데, 사나다 노부시게는 이런 무의미한 전투로 병력상의 피해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부대를 다급히 후퇴시켰다. 만약 이때 다테 마사무네가 마음 먹고 추격전을 벌였다면 유키무라 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겠지만, 마사무네는 유키무라를 두려워한 나머지 공격을 포기하고 전황을 관망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내정, 외교가로서 다테 마사무네

무장으로서는 다른 다이묘들에 비하여 상당히 떨어진다고 봐야 하는 마사무네이지만, 내정가 혹은 외교가로서의 마사무네는 가히 전국 다이묘 중에서도 최고라고 해도 될 만큼 대단합니다.

내정 부분에서는 센다이 평야를 개간하며 부하들에게도 개간 사업을 장려, 운하를 건설하는 등 내정에 힘을 쓴 끝에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 58만 석이었던 영지를 말년에는 100만 석으로 늘렸고, 자신의 아들에게도 계속해서 개발 사업을 장려하여 백년 후에는 무려 석고가 200만 석까지 늘어나 일본 최대의 번이 됩니다. 또 대형 항구를 만들어서 에도에 이 쌀들을 판매하는 해상 판로를 개척했죠. 이 쌀 판매는 대단히 활발했는데, 에도 시내에서 소비하는 쌀의 절반이 센다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내정도 대단했지만 특히 더 대단한 건 외교 부분인데, 전체적으로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최초로 다테 가문이 망할 뻔했던 위기에서 동맹이었던 호죠 가문을 움직여 가문의 멸망을 막았고, 이후로도 호죠 가문과 계속해서 친선하며 강적인 사타케 요시시게를 호죠와의 싸움으로 묶어두었고, 메고히메를 아내로 맞으며 타무라 집안과 혼인 동맹을 맺고 니혼마츠 가문을 압박합니다.


다테 마사무네 취미 및 성격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서양 문물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후에는 직접 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에스파냐인들의 도움으로 서양식 배를 만든 뒤 로마 교황청으로 사절단을 보내 무역 허가서까지 얻어냈습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가 쇄국령을 내린 탓에 이 무역 허가서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죠.

당시 남자들로서는 상당히 깨는 취미였던 요리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병사들이 먹을 전투식량을 개발하다가 취미로 변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요리란 제철 재료를 자연스레 꺼내서 주인이 직접 조리하여 대접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지요. 센다이 근처의 몇몇 요리학교는 다테 가문의 비전 요리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겉보기와 달리 자신의 군사들은 유달리 아꼈다고 합니다. 동맹을 제안하러 사신으로 보낸 병사가 타국에서 기습받아 불구가 돼 돌아오자 그 적국을 초토화시켰고 병사 몇 명이 포로로 되었을 때도 그 상대국을 공격했다고 하네요. 또 카타쿠라 카게츠나를 포함해 여러 심복들이 죽어나가자 "내 생명을 가져가는 것 같다."며 한탄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다테 마사무네의 유훈

인이 지나치면 약해지며

의가 지나치면 완고해지되

예가 지나치면 아첨이 되나니

지가 지나치면 거짓을 말하게 되고

신이 지나치면 손해를 입느니라.


느긋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모든 일에 검약하여 재화를 쌓을지어다.

검약하는 방법은 자유롭지 못함을 견딜 줄 앎에 있으니,

이 세상에 객으로 온 것이라 생각한다면 무엇이 힘들겠는가.


세 끼의 식사가 맛없더라도

맛있게 먹을지어다.

원래 객의 신분이라 함은

찬의 맛있고, 맛없음에 따질 수 없는 것이니라.


오늘이 흘러감을 배웅한 후

자손형제들에게 두루 인사를 고하고

이 속세에 휴식을 청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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