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의 호랑이라 불린 전국시대 명장 '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은 일본 센고쿠 시대 다이묘이자 뛰어난 장수들이 많았던 센고쿠 시대에도 손꼽히던 명장입니다. 통칭 가이의 호랑이라고 불렸죠. 우에스기 겐신과의 라이벌 관계로 유명하며, 손자병법에서 따온 풍림화산의 깃발을 들고 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아명은 다케다 다로이며, 성인이 돼 당시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이름을 받아 다케다 하루노부가 됩니다. 훗날 불자가 되면서 법명을 신겐으로 하게 돼, 다케다 신겐이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다케다 신겐 생애

아버지 다케다 노부토라와 가독 승계 문제로 다투던 끝에 손을 써서 아버지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무혈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버지의 지위를 빼앗은 뒤, 아버지를 스루가의 이마가와 가문으로 보내버린 후 젊은 나이에 카이의 다이묘 자리에 올랐습니다.

다케다 가문이 터 잡은 카이, 시나노 지방은 산이 많아 농업도 불리하고 바다도 없어 교역하기도 좋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손꼽히는 명마 산지라서 군마가 풍부해, 기병 활용에 유리하다는 거대한 군사적 잠재력을 갖춘 지역이었죠.

물론 이 시대 일본 말은 땅딸막한 조랑말 수준이고 충격기병으로 활용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경사진 산야에서 자라 다리가 튼튼한 카이 말들은 인간의 두 다리보다 훨씬 빠른 시속 40km로 달릴 수 있고, 인간이 들기 힘든 무거운 짐도 나를 수 있으므로 아시가루 위주로 굴리는 적들보다 훨씬 유리하게 싸울 수 있었습니다.

다케다 신겐은 가독을 물려받은 이후 카이의 내외부를 평정하고 북부의 시나노에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스와, 운노 등 강력한 지방 호족들을 격파하고 카이, 시나노에 걸쳐 패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러나 이 과정에서 최후의 장애물이었던 북시나노의 호족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나름대로 강하게 저항해서 1548년에는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신겐에게 패배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다케다 신겐, 교토를 노리다.

다케다 신겐은 형식상 동맹을 유지하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우호적인 서찰을 보내가며 그 대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인 미카와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동맹 관계였으므로 사실상 전쟁이 발발했지요. 노부나가는 아사쿠라 등 다른 주변세력에 주력이 다 발이 묶여 있어서 도쿠가와에게 몇 안 되는 지원군밖에 보낼 수 없었고, 곧이어 미카타가하라 전투가 발발합니다. 신겐이 이끄는 본대가 다다라이 성, 아마카타 성, 이치노야 성, 이이다 성, 가쿠와 성, 무사카 성 등 도쿠가와의 성들을 하루 만에 접수합니다. 결과적으로 다케다 신겐의 매서운 공격에 의해 도쿠가와 이에야스 군은 궤멸됐지요.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군을 격파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겐 자신이 병으로 쓰러지면서 상경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당시 오다 노부나가는 한동안 잠을 못 이루다가 신겐의 죽음을 듣고 3일 밤낮을 잠만 잤다고 하네요.


"대부분 땅에 맡겼으니 몸을 쉬고 싶다. 꾸밀 것 없이 내 인생은 풍류였도다."

- 다케다 신겐이 남긴 사세구 시.



다케다 신겐 평가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서는 신겐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 번 봅시다.

"부하가 조금이라도 실패를 하면 바로 그를 죽여 없애버린다. 손실을 거의 내지 않고 적국을 정복하는 등 전술에 뛰어나며, 유구르타와 비슷하다. 매일같이 우상에 기도를 올리며, 승복을 즐겨 입고 전장에도 수백 명의 승려를 대동하는 등 신앙이 독실해 보이지만, 사실 그 신앙은 타국을 정복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스스로 '천태종 좌주 사문 신겐'이라고 칭한다."


노부토라 대에는 많은 호족들을 숙청하는 등 카이의 슈고 가문이었던 다케다 가문의 지위는 그다지 공고하지 못했습니다. 신겐은 이것을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했는데, 우선 신세력들에게 대가 끊긴 명가를 계승하게 하는 방식으로 능력 있는 자의 신분을 올려 적극적으로 발탁합니다. 그리고 시나노 정복 사업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세워서 느슨한 호족 연합체에 불과하던 카이의 호족들을 다케다 가문 밑에 단결한 가신단으로 만들었고, 사나다씨 등 시나노 지방의 호족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했지요.

카이 지방의 금은 본래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신겐은 보다 발전된 제련 기술의 도입과 활발한 새 금광 개발을 통해 순도가 높고 막대한 양의 금을 확보하였고, 이들은 코슈킨이라고 불리며 신겐의 중요한 자산이자 무기로 사용됩니다. 야마나시의 여러 산에는 아직 폐쇄된 갱도의 흔적이나 금을 채굴하던 장비들이 남아있습니다. 다케다 신겐은 금광 개발에 쓰인 기술을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동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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