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호조씨 당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 '호조 우지야스'
호조 우지야스
호조 우지야스는 일본 전국시대 다이묘입니다. 호조 우지쓰나의 아들이며, 후호조씨 3대째인 우지야스는 후호조씨 당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호조 우지야스 생애
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호조 우지야스는 전국시대 제일의 민생가로 유명합니다. 화폐 통일, 탄력적인 조세 정책, 관료 제도 개혁 등 제도적으로 앞서갔고, 일본 최초의 상수도망 구축, 지역 문화 개발을 위한 직공, 문화인 초빙 등 민중의 생활에도 큰 관심을 가진 군주였죠.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관동으로 전봉된 뒤, 이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우지야스를 그리워하였습니다.
우에스기 겐신, 다케다 신겐, 이마가와 요시모토 등을 수비전에서 물리치곤 하여 왠지 수성의 명군(성을 지키는 최고의 장군)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후호조 씨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 시기가 바로 우지야스 시절입니다.
1546년 야마노우치, 우에스기의 수장 노리마사, 오기가야츠 우에스기의 수장 토모사다, 코가 쿠보 아시카가 하루우지의 관동 연합군 8만을 8000명의 병력으로 무찌른 '가와고에 성 전투'는 일본 3대 기습 중 하나로 일컬어집니다. 이 승리로 토모사다를 죽여 오기가야츠 가문을 멸망시켰고, 야마노우치 가문과 코가 쿠보에도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호조 가문을 관동의 패자로 만들었지요. 호조 우지야스의 활약이 대단했네요.
그러나 우지야스는 전국 시대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명군임에도, 주위의 다이묘들이 너무 강해서 인지도 면에서 밀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호조 우지야스는 어릴 적에는 굉장히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별것 아닌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서 주위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16세가 되던 1531년에 처음으로 출진하여 대승을 거두고, 우에스기나 코가쿠보 아시카가, 사토미 등의 주위 세력과의 싸움에서 공을 쌓아나갑니다.
우지야스가 당주가 되었을 무렵에는 점점 세력을 신장하는 '굴러온 돌' 호조가에 대하여 관동 다이묘들의 감정이 나쁠 때였습니다. 이런 배경 하에 1545년에 이마가와 요시모토, 우에스기 노리마사, 아시카가 하루우지 등이 반 호조 연합을 형성하게 되나(제2차 카토의 난), 다케다 신겐의 중재로 화해합니다.
호조 우지야스는 전투에도 직접 참전하여 싸운 적이 많은데 이로 인해 외모도 초상화와 달리 얼굴에 큰 상처 2개, 전신에 수십개의 상처가 있는 인생 굴곡을 겪었다고 하네요. 얼굴의 상처는 가와고에 성 전투 당시에 참전하여 싸우다가 입은 상처인데 이후 칼이 날아와도 적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는 용맹함을 칭송하는 의미로 '우지야스 상처'라는 말이 생겨납니다.
우지야스가 45살이던 1559년에 영지에서 발생한 기근을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우지마사에게 가독을 상속하였으나 여전히 실권을 쥐고 있었고, 이후 죽기까지 십수년에 걸쳐 우지마사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절차를 밟았죠. 만년에는 중풍에 걸려 거동이 힘들었다고 하며, 일부 기록에 따르면 가끔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등 경도의 치매 증상을 보였다고 하네요. 우지야스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다 1571년 10월 3일에 오다와라성에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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